티스토리 뷰
목차
근무하는 집합건물의 1층과 2층, 2층과 3층을 잇는 에스컬레이터가 총 4 대가 있습니다. 같은 구간에 계단과 엘리베이터가 모두 설치되어 있어서, 입주민들은 거의 엘리베이터나 계단만 이용했습니다. 관리소장으로 부임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부터 "저 에스컬레이터, 누가 쓰나요?"라는 질문을 입주민들에게서 직접 듣기도 했습니다. 궁금해서 한 달간 직접 시간대별 이용 현황을 체크해봤는데, 출퇴근 시간을 포함해도 하루 이용객이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반면 같은 구간의 엘리베이터와 계단은 꾸준히 이용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용자가 거의 없어도 법적 의무는 그대로 따라온다는 점이었습니다. 에스컬레이터도 승강기 안전관리법상 '승강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관리주체는 월 1회 이상 자체점검을 하고 그 결과를 승강기안전종합정보망에 입력해야 하고, 정기적으로 안전검사도 받아야 합니다. 이 모든 절차에는 유지관리업체와의 계약비, 검사 수수료, 자체점검 인력 투입 등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갑니다. 실제로 연간 유지관리비와 검사비를 합산해보니, 하루 평균 이용객 수에 비해 비용 부담이 상당하다는 게 숫자로 드러났습니다. 이 자료를 입주자대표회의에 보고하자 "차라리 세워두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이 자연스럽게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관리사무소장 혼자 정할 수 없는 일 — 관리단총회까지 간 이유
여기서 가장 먼저 분명히 한 것은, 이건 관리사무소장 재량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에스컬레이터는 입주민 개인 소유물이 아니라 집합건물의 공용부분입니다. 공용부분의 관리에 관한 사항은 관리단집회 결의로 정하도록 되어 있고, 단순한 보수나 청소 같은 통상적 관리 행위를 넘어 운행 자체를 멈추는 것처럼 이용관계에 변화를 가져오는 사안일수록 의결 절차를 더 꼼꼼히 거쳐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관리사무소 차원에서 ① 시간대별 이용 현황 자료, ② 대체 통로(계단·엘리베이터)의 위치와 접근성, ③ 운행휴지 시 예상되는 연간 비용 절감 효과, ④ 향후 재가동이 필요해질 경우의 절차까지 미리 정리한 보고서를 만들어 총회 안건으로 올렸습니다. 입주민 설명회에서도 같은 자료를 공유했는데, 이미 대부분 다른 통로를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과 안전점검·검사 비용이 매년 관리비로 고스란히 청구되고 있다는 점을 설명하니 반대 의견이 거의 없었습니다. 일부 입주민은 비상시 대체 통로 확보가 확실한지를 재차 확인했는데, 이 부분은 소방 피난계단이 별도로 있다는 점을 설명해 우려를 해소했습니다. 결국 총회에서는 비교적 무난히 운행휴지 안건이 의결되었습니다.
총회 의결 이후 — 공단 신고와 안전조치
다만 총회에서 의결됐다고 그날부터 곧장 운행을 멈춰도 되는 건 아니라는 점을 직원들과 다시 한번 짚었습니다. 절차를 정리하지 않고 운행만 임의로 멈추면, 나중에 자체점검 미이행이나 안전검사 미이행으로 과태료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총회 의결문과 회의록을 근거자료로 첨부해 관리주체 명의로 한국승강기안전공단에 운행 중단(휴지) 사실을 통보했습니다. 이후 다음 정기검사 시기가 돌아왔을 때는 별도로 안전검사 연기 신청도 함께 진행했습니다. 운행을 멈춘 상태라면 정기검사를 매번 받지 않아도 되는 길이 열려 있지만, 그렇다고 관리 의무 자체가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운행정지 표지를 승강장 입구 바닥 중앙에 부착하고, 전원을 차단·봉인해 외부인이나 어린이들이 임의로 작동시키지 못하도록 하는 안전조치는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또한 공단 담당자에게 확인한 결과, 추후 입주민 수요가 달라져 다시 가동하고자 할 경우에는 운행 재개 신고와 함께 안전검사를 새로 받아야 한다는 점도 안내받았습니다. 이 내용은 관리규약 부속 자료에 함께 기록해 두어, 이후 담당자가 바뀌어도 이 경위를 그대로 확인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정리하며 — 법률 근거와 휴지 이후에도 남는 의무
나중에 이 사안을 두고 법적 근거를 다시 짚어봤습니다. 공용부분의 관리에 관한 사항을 결정할 권한은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16조에 따라 관리단(집회)에 있고, 단순 관리를 넘어서는 변경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면 같은 법 제15조의 공용부분 변경 절차까지 함께 검토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저희 사안은 시설 자체를 철거하거나 구조를 바꾼 것이 아니라 운행만 멈춘 것이어서 관리 사항으로 보고 진행했지만, 이런 경계가 모호한 경우에는 의결 정족수를 보수적으로 맞춰두는 편이 분쟁을 예방하는 데 유리합니다.
또한 에스컬레이터도 승강기 안전관리법 제2조제1호상 '승강기'에 해당하므로 같은 법 제31조의 자체점검 의무, 제32조의 안전검사 의무가 그대로 적용됩니다. 다만 같은 법 시행규칙은 '관리주체가 승강기의 운행을 중단한 경우'를 안전검사 연기 신청이 가능한 사유로 명시하고 있어 이를 활용했습니다. 운행정지 표지 부착 등 이용자 안전조치 의무, 그리고 한국승강기안전공단에 대한 통보 의무도 법에서 함께 정하고 있어, 멈춰두는 동안에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부분이었습니다. 만약 이런 절차 없이 그냥 운행만 중단했다면, 정기검사를 받지 않은 상태가 되어 오히려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될 뻔한 상황이었습니다.
이 일을 겪으며 체크리스트도 손봤습니다. 이용자가 적은 시설의 휴지를 결정할 때는
① 시간대별 이용 현황과 대체 통로 여부를 객관적 자료로 남기고
② 관리단(또는 입주자대표회의) 총회 의결을 먼저 받고, 변경의 정도가 크다면 공용부분 변경 절차까지 함께 검토하고
③ 공단에 운행중단 사실을 통보하고 필요 시 안전검사 연기를 신청하고
④ 운행정지 표지 부착, 전원 차단·봉인 등 안전조치를 끝까지 유지하고
⑤ 재가동 시 필요한 절차(재개 신고·안전검사)까지 미리 기록해 인수인계 자료로 남기는 것
이 순서를 빠뜨리면 안 된다는 걸 배웠습니다. 사람이 적게 다니는 시설일수록 "그냥 세워두면 되지"라는 생각이 들기 쉽지만, 공용부분을 멈추는 일도 결국 의결기구의 정당한 결정과 행정기관에 대한 정확한 통보, 그리고 멈춘 이후의 안전관리까지 함께 갖춰져야 비로소 안전한 휴지가 된다는 것을, 이번 일로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입주민들 중에는 이번에는 아예 에스컬레이터를 철거하자고 하시는 분도 계신데... 글쎄요... 철거도 가능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