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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 차 건물의 관리소장으로 일하면서 겪은 일 중에,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사례가 하나 있습니다. 옥상과 옥탑이라는, 같은 건물 안에서도 전혀 다른 취급을 받는 두 공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법조문이나 점검 매뉴얼만 봐서는 절대 와닿지 않는 그 차이를, 직접 사고를 겪고 나서야 절감했던 경험을 풀어보려 합니다.

    옥상과 옥탑 — 같은 꼭대기인데 관리는 완전히 다른 두 공간

    옥상은 입주민들이 운동하러 올라오기도 하고, 명절이면 빨래를 널러 오기도 하는 공간입니다. 사람이 자주 다니니 누수나 크랙이 생기면 누군가는 반드시 알아채고, 관리사무소에 민원이 들어옵니다. 그래서 옥상 방수는 점검표에 늘 들어가 있고, 주기적인 보수도 비교적 수월하게 이루어집니다.
    반면 옥탑은 전혀 다릅니다. 올라가려면 위험한 철제 사다리를 타야 하고, 그 안에는 딱히 중요한 설비도 없습니다. 무선 통신사업자가 안테나를 설치해두고 가끔 점검하러 올라오는 게 거의 유일한 출입입니다. 사람이 다니지 않으니 문제가 생겨도 알아챌 사람이 없고, 그래서 관리사무소 체크리스트에도 옥탑은 빠져 있는 경우가 흔합니다. 저 역시 부임 초기에는 그 공간을 그냥 지나쳤습니다.

     

    집합건물 방수전 옥탑사진

    장마가 만든 사고 — 배수로 막힘에서 권상기실 침수피해까지

    문제는 입주 20년이 넘은 건물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옥탑 바닥의 방수층은 시간이 흐르며 모래처럼 부서지기 시작했고, 그 부스러기들이 빗물에 씻겨 내려가 배수로 입구에 조금씩 쌓였습니다. 평소엔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해 여름, 단기간에 쏟아진 폭우가 모든 걸 바꿔놨습니다.
    배수로가 막힌 옥탑 바닥에 물이 고이기 시작했고, 오래되어 갈라진 크랙 사이로 물이 스며들어 아래층 권상기실로 흘러들어갔습니다. 권상기실은 승강기의 심장 같은 공간입니다. 그 안에 물이 들어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그날 직접 겪어보고서야 절감했습니다. 비상정지, 제어반 오작동, 결국 건물 내 승강기 전체가 멈춰섰습니다.
    입주민들의 항의 전화가 끊이지 않았고, 저는 곧바로 현장으로 올라갔습니다. 철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옥탑은 그야말로 처참했습니다. 방수층이 곳곳에서 떨어져 나가 있었고, 배수구는 모래와 부스러기로 완전히 막혀 있었습니다. 이건 단순 보수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응급조치와 선집행 — 장기수선충당금을 둘러싼 고민

    가장 먼저 한 일은 응급 배수로 확보였습니다. 인력을 동원해 막힌 배수구를 수작업으로 뚫고, 권상기실 침수 부위는 방수포로 임시 차단했습니다. 동시에 승강기 유지보수업체에 연락해 전체 점검을 요청했고, 다행히 큰 부품 손상 없이 제어반 건조와 일부 부품 교체로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임시조치만으로는 같은 일이 또 벌어질 게 뻔했습니다. 장마가 끝나자마자 옥탑 바닥 전체 방수 재시공과 배수로 정비 공사를 진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문제는 비용이었습니다. 이런 공사는 입주자대표회의나 관리단의 의결을 거쳐 장기수선충당금 사용계획서를 먼저 승인받는 게 원칙입니다. 그런데 이미 권상기실 침수로 승강기가 멈춘 상황에서, 다음 정기회의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긴급보수로 판단해 장기수선충당금을 선집행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절차적으로 문제가 없도록 신경 썼습니다. 피해 현황과 긴급성을 사진과 점검 기록으로 꼼꼼히 남겼고, 회장 및 운영위원 일부에게 사전 유선 보고와 동의를 받았습니다. 공사는 견적 비교를 거쳐 진행했고 모든 지출 내역을 정리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차기 관리단회의에서 공사 경위, 비용, 사용 내역을 보고하고 정식으로 추인을 받았습니다.

    정리하며 — 선집행이 문제가 되지 않으려면

    집합건물 옥탑 방수공사 후 사진

     

    나중에 이 사안을 두고 적법성을 다시 짚어봤습니다. 장기수선충당금은 원칙적으로 사용계획서를 사전에 의결받아 사용하는 것이 맞습니다(공동주택관리법 제30조제4항, 같은 법 시행령 제31조제5항). 그러나 이번 지출은 시설물 교체·보수라는 충당금의 본래 목적에 정확히 부합했고, 사적으로 전용한 것이 아니라 안전사고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점, 그리고 사후에 투명하게 보고하고 정식 추인을 받았다는 점에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 하급심 판례에서 문제가 된 사례들은 충당금을 인건비나 다른 관리비 용도로 돌려쓴 경우였지, 본래 목적인 시설 보수에 쓴 경우는 아니었습니다. 그 차이를 분명히 알고 있었기에 추인 절차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이 일을 겪고 나서 체크리스트를 바꿨습니다. 옥탑은 더 이상 "안테나만 있는 공간"이 아니라 매년 장마 전 필수 점검 항목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응급공사가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선집행 자체를 두려워하기보다

     

    ① 긴급성과 피해 증거를 남기고

    ② 가능한 범위에서 임원 사전 동의를 받고

    ③ 견적과 지출 내역을 투명하게 정리해서

    ④ 차기 회의에서 정식 추인을 받는 절차를 빠짐없이 지키는 것

     

    이 훨씬 중요하다는 걸 배웠습니다. 사람이 자주 다니지 않는 공간일수록 문제가 쌓여도 알아채기 어렵다는 것, 그리고 그런 공간에서 사고가 났을 때 충당금을 어떻게 정당하게 써야 하는지를,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배운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