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운행을 멈춰뒀던 에스컬레이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휴지 상태로 1년 넘게 두다 보니 이번에는 다른 방향의 민원이 들어왔습니다. "어차피 안 쓰는데 자리만 차지하니 차라리 철거하고 그 공간을 다른 용도로 쓰자"는 의견이었습니다. 일부는 그 자리에 수납공간이나 휴게공간을 만들자고 했고, 일부는 안전을 위해 아예 막아버리자고 했습니다.저는 여기서부터 속도를 늦췄습니다. 휴지는 운행을 멈추고 안전조치만 해두면 되는 비교적 단순한 절차였지만, 철거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휴지는 시설을 그대로 둔 채 사용만 중단하는 것이라 원상회복이 쉽지만, 철거는 건축물의 구조와 외관을 실제로 바꾸는 행위입니다. 실제로 다른 건물에서 관할관청 허가 없이 에스컬레이터를 철거하고 방화셔터까지 제거해 ..
근무하는 집합건물의 1층과 2층, 2층과 3층을 잇는 에스컬레이터가 총 4 대가 있습니다. 같은 구간에 계단과 엘리베이터가 모두 설치되어 있어서, 입주민들은 거의 엘리베이터나 계단만 이용했습니다. 관리소장으로 부임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부터 "저 에스컬레이터, 누가 쓰나요?"라는 질문을 입주민들에게서 직접 듣기도 했습니다. 궁금해서 한 달간 직접 시간대별 이용 현황을 체크해봤는데, 출퇴근 시간을 포함해도 하루 이용객이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반면 같은 구간의 엘리베이터와 계단은 꾸준히 이용되고 있었습니다.문제는 이용자가 거의 없어도 법적 의무는 그대로 따라온다는 점이었습니다. 에스컬레이터도 승강기 안전관리법상 '승강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관리주체는 월 1회 이상 자체점검을 하고 그 결과를 승강기안전종..
20년 차 건물의 관리소장으로 일하면서 겪은 일 중에,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사례가 하나 있습니다. 옥상과 옥탑이라는, 같은 건물 안에서도 전혀 다른 취급을 받는 두 공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법조문이나 점검 매뉴얼만 봐서는 절대 와닿지 않는 그 차이를, 직접 사고를 겪고 나서야 절감했던 경험을 풀어보려 합니다.옥상과 옥탑 — 같은 꼭대기인데 관리는 완전히 다른 두 공간옥상은 입주민들이 운동하러 올라오기도 하고, 명절이면 빨래를 널러 오기도 하는 공간입니다. 사람이 자주 다니니 누수나 크랙이 생기면 누군가는 반드시 알아채고, 관리사무소에 민원이 들어옵니다. 그래서 옥상 방수는 점검표에 늘 들어가 있고, 주기적인 보수도 비교적 수월하게 이루어집니다.반면 옥탑은 전혀 다릅니다. 올라가려면 위험한 철제 사다리..
관리사무소에서 일한 지 어느덧 십수 년이 넘었다. 그동안 자치관리 단지에서도 근무했고, 위탁관리 회사 소속으로도 일했고, 도급관리 계약을 맺은 단지에서도 근무했습니다. 같은 "관리사무소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있어도 세 가지 방식은 일하는 방식부터 책임 구조, 심지어 월급이 나오는 통장까지 완전히 다릅니다. 법조문만 봐서는 잘 와닿지 않는 차이를, 직접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볼려고 합니다.자치관리 — 입주자대표회의가 사장님인 곳자치관리 단지에서 일할 때가 가장 책임이 무거웠습니다. 공동주택관리법 제6조에 따르면 자치관리는 입주자대표회의가 직접 관리사무소장을 선임하고, 시행령에서 정한 기술인력과 장비를 갖춘 자치관리기구를 구성해 운영하는 방식입니다. 즉 위탁관리업체라는 중간 단계 없이, 입주자대표회의가 ..
작년에 우리 동네 상가 관리규약 개정 건으로 회의에 들어갔다가, 옆 동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에서 비슷한 시기에 관리규약을 고치는 걸 보고 "어? 절차가 왜 저렇게 쉽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올해 초 지식산업센터 사무실을 분양받은 지인이 관리규약 신고 문제로 머리를 싸매는 걸 보고서야, 이 세 가지가 법적으로 전혀 다른 트랙 위에 있다는 걸 제대로 이해하게 됐다. 직접 부딪혀 본 경험과 그 과정에서 찾아본 법조문을 정리해 본다.1. 아파트(공동주택) — 과반수면 통과되는 비교적 가벼운 절차상가 일을 겪고 나서 아파트 쪽 절차를 들여다보니 허탈할 정도로 간단했다. 공동주택관리법 제18조와 시행령 제19조에 근거하는데, 서울시 관리규약 준칙을 보면 절차가 이렇게 정리되어 있다.입주자대표회의 또는 입..
집합건물 관리사무소장으로 근무하면서 가장 까다로운 업무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관리규약 변경 같은 중요 안건을 처리하는 일입니다. 관리단 총회를 거쳐야 하는데,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오늘은 제가 서로 다른 두 건물에서 각각 서면결의서 방식과 전자투표 방식으로 관리규약 변경을 진행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두 방식의 현실적인 차이를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관리단 총회, 정족수부터 막막합니다관리규약을 변경하려면 관리단 총회를 열어서 일정 비율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통상 관리규약 변경 같은 중요 사안은 구분소유자 및 의결권의 과반수, 경우에 따라서는 4분의 3 이상의 동의가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비율을 채우는 것이 현실적으로 정말 어렵습니다.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입주민들은 ..